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에 대한 의혹을 규명할 특별검사 임명법이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주도로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국민의힘은 “의회 폭주”라며 본회의장에서 퇴장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 사흘 만에 또다시 거부권 행사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국회는 2일 ‘순직 해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도피성 출국 과정 위법행위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본회의 표결에 부쳐, 재석 168명에 찬성 168명으로 가결했습니다.
특검법의 핵심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및 이 전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 및 출국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수사하기 위한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것입니다. 수사 대상에는 대통령실, 외교부, 법무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이 명시되었습니다.
특검 추천 절차는 대한변호사협회(변협) 회장이 변호사 4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자신이 소속됐거나 됐던 정당을 뺀 교섭단체에 특검 추천을 서면으로 의뢰하고, 해당 교섭단체가 대통령에게 2명의 후보를 추천해 그 중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입니다. 특검추천 의뢰 조건에 부합하는 교섭단체는 민주당 뿐입니다.
특검은 임명된 날부터 20일간 직무수행에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으며, 준비기간 만료일의 다음 날부터 60일 안에 수사를 완료하고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다만 대통령 승인을 받아 수사 기간을 30일 연장할 수 있습니다. 특검은 피의사실 외 수사과정에 대해 언론 브리핑을 실시할 권한을 갖습니다.
채상병 특검 표결은 여야 합의 없이 더불어민주당이 의사일정 변경안 상정을 요청하고,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받아들임에 따라 이뤄졌습니다.
법안 대표발의자인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표결에 앞서 한 법안 제안설명에서 “채 해병 사망사건이야말로 특검을 도입해야 하는 대표적 사건”이라며 “국가 최고 권력기관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실까지 연관됐다는 의혹을 받는 사안에 대해 성역 없이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공수처인데, 공수처는 수사 의지를 갖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조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채 해병 순직 사건의 진실을 밝히라는 것이 이번 총선 민심이기도 하다”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총선 민심을 똑바로 새기기를 부탁드린다”고 촉구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의사일정 변경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항의의 뜻으로 퇴장한 뒤, 국회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었습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의사일정을 변경해도 국회의장이 양당 간 숙의 시간을 주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민주당과 짬짜미가 돼 입법폭주한 것은 정말 개탄스럽다”고 김 의장을 비난하며 “이번 폭거와 관련, 우리 당은 21대 마지막까지 모든 국회 의사일정에 협조할 수 없다. 새 원내대표가 선출되면 새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마지막까지 국민과 함께 의회 폭주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규탄대회 뒤 기자들과 만난 윤 원내대표는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반면 특검법 통과를 요구해온 해병대 예비역들은 법안 통과 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여당의 특검법 수용을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회견에서 “(법안이 통과됐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불안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정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을 군말 없이 수용하기 바란다. 국민 요구를 묵살하고 거부권을 행사할 시, 우리 해병대 예비역들은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을 적으로 규정하고 사생결단의 항전을 할 것을 선포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들은 “여기 모인 해병대 예비역들은 피 흘릴 각오가 돼있다”며 “국민을 외면하고 보수 가치를 망각한 자들이 국민이 부여한 마지막 기회에 응하지 않는다면 해병대 예비역연대는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 궤멸의 선봉에 설 것”이라고까지 했습니다.
박주민 수석도 이 회견에 참석해 “(본회의) 통과가 됐지만 끝난게 아니라 대통령 거부권을 넘어야 한다”며 “많은 국민이 바라는 법인데 대통령이 거부할까 봐 걱정하는 현실이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박 의원은 “많은 국민이 이 사건 진상규명을 바란다는 것을 정부·여당이 똑바로 인식했으면 한다”며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고 수용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습니다.
한편 여야 간 또 다른 쟁점 사안인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도 재석 268명에 찬성 176명, 반대 90명, 무효 2명으로 야권 주도 하에 다음 본회의 부의가 확정되었습니다.
이 법안의 주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관의 채권 매입을 통한 사기 피해 임차보증금 선 구제, 후 회수 프로그램 도입, 사기 피해자 요건 중 임차보증금 한도를 현행 5억 원에서 7억 원으로 상향, 법원에 사기 피해주택 강제집행 일시 정지 권한 부여 등입니다.
앞서 이날 본회의에서는 여야 합의에 따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및 피해자 권리 보장이 주 내용인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가결되었습니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적을 옮긴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임의 건도 무기명 표결을 거쳐 가결되었습니다.